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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노트 - 요한복음 8:1-11 - 김정훈 목사님

작성자
leekyosik leekyosik
작성일
2020-03-18 21:18
조회
124
03/17/2020

본문: 요한복음 8:1-11

제목: 용서하시는 예수님

설교자: 김정훈 목사님

찬송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 ( 280장 )



앞선 7장 말씀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초막절 기간에 사람들을 보내어서 예수님을 잡고자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굴복되어서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댈 수 가 없었다.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 특별한 계략을 하나 꾸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음행 중에 붙잡힌 여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함정에 빠지시기는 커녕 오히려 이들이 상상치도 못한 말씀을 통해서 사랑으로 죄를 범한 여인을 용서해 주신다. 이를 통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모든 율법을 초월하신 예수님의 용서를 통해서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율법에 유일한 주인이심을 세가지를 통해서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초월해서 이 여인을 용서하신것은



1.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직접 만드신 제정자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 율법을 직접 만드신 율법의 제정자이시라는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음행 중에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에게 끌고 왔다.



(요한복음 8:3-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음행 중에 현장에서 잡힌 한 여자를 예수님께로 끌고왔던 것이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8:6 상)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바로 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은 즉시로 율법에 따라서 처형하지 않고 굳이 예수님께로 끌고 온 이유는 다름아니라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한 조건과 명분을 얻기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돌로치라고 말씀하신다면 이것은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에 스스로 모순이 될 뿐만 아니라 이것은 사형의 권한이 오직 총독에게만 있었던 그 당시의 로마의 법에도 접촉되는 일이였다. 반대로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율법의 파괴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두 가지 답변 중에 어떤 답변을 하시든지간에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이런 교묘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반응하신다.



(요한복음 8:6하)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에 답변하시기 보다는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인가를 쓰셨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8:7-8)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바로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는 것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땅에 무슨 내용을 쓰셨는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성경은 예수님께서 두번씩이나 땅에 쓰셨다고 하는 예수님의 행위를 분명하게 기록한다. 무슨 내용을 쓰셨는가는 여러가지 신학적인 이론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예수님이 쓰신 내용은 기록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두번씩이나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쓰신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두번씩이나 땅에 쓰셨다는 그 행위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옛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두번씩이나 돌판에 직접 써주셨던 삼위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한번 재연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갇혀계신 분이 아니라 율법을 초월해 계신 분이시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율법 자체를 직접만드신 율법의 제정자이심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을 두번씩이나 직접 돌판에 써주셔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두번씩이나 직접 땅에 쓰심으로써 자신이 바로 율법을 직접 만드신 율법의 제정자이심을 나타내신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직접 제정하셔서 그래서 율법의 영역을 초월해 계신 분이시기에 모든 율법의 규정을 초월하여서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셨던 것이다.



2.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목적을 완벽히 성취하신 율법의 완성자시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이유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주신 본질적인 목적은 우리를 정죄하고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나의 죄를 깨닫게 하셔서 한편으로는 회개하고 용서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 큰 죄에 빠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신다.

(요한복음 8:11 하)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죄를 무턱대고 용서해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죄를 무턱대고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이 범한 죄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지적하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신다. 왜냐하면 율법의 본질적인 목적은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결국에는 용서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예수님게서는 정죄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으로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끌고 왔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동일하게 사랑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불순한 목적을 위해서 게획된 의도를 가지고 이 여인의 죄를 공개적으로 정죄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모든 계략을 이미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정죄하거나 저주 하지 않으시고 그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셔서 이들과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신것이다.



(요한복음 8:7 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바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허물과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도 남의 티만 문제삼고 또 그것을 정죄하고자 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셔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하신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는 더 큰 죄에 빠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게 하신것이다. 마치 운전하다가 앞선 차가 고장난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내 차를 점검하게 되는 것처럼,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육체의 질병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나의 건강을 체크 하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남을 정죄하며 돌을 던지기 전에 이 여인의 죄에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죄를 먼저 돌아보게 하신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정죄가 아니라 사랑으로 율법의 목적을 완성하신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규정을 초월하셔서 율법의 목적을 완벽히 성취하신 율법의 완성자이시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규정을 초월하여서 이 여인을 용서해 주신 것이다.



3.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심판자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시는 율법의 심판자 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체포할만한 조건과 명분을 얻기위해서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며 끌고 왔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 앞에 굴복되어서 하나씩 하나씩 모두다 사라지게 되었다.



(요한복음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바로 여인을 정죄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한명씩 한명씩 다 사라지고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율법의 판단자가 되어 죄지은 여인을 율법에 따라서 심판하기 위해서 모였다. 그런데 그렇게도 당당하게 율법의 심판자임을 자처했던 이들이 모두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죄지은 여인과 예수님 한 분만 남았다. 이것이 다름 아니라 이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한 심판자는, 이 땅에 어느 누구도 이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심판자가 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이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한 심판자시라는 것이다.



사실 이 여인은 여러 차례 죄값을 받았다. 먼저 이 여인은 자신과 더불어서 간음했던 남자를 통해서도 죄값을 받았다. 이 여인은 다름 아니라 간음의 현장에 붙잡혔다. 그런데 간음이라는 죄는 여자 혼자서 지을수가 없는 죄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이 여인만 혼자 남았다. 이 상황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학적인 배경이 있지만 아무래도 이 남자가 끝까지 붙잡히지 않은 이유는 이 여인이 자신과 간음한 남자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이 여인은 모든 죄를 혼자서 다 짊어지고 갈려고 했지만 이 남자는 참으로 무력하고 비겁하게도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이 여인은 이미 그 남자에게 버림받은 것만으로도 죄값을 치르는 중이였다. 또한 이 여인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부터도 죄값을 받았다. 이 여인은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힌 즉시로 어쩌면 그 자리에서 돌로 맞아 죽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정죄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인해 여자로서는 죽는 것보다 더한 참담함과 수치심에 치를 떨어야 하고 수많은 사람들앞에 공개적으로 세워지고 욕설과 비난과 침뱉음을 당하며 이제 곧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여인은 이러한 고통만으로도 자신의 죄값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당당하고 그렇게도 의기양양하게 이 여인을 정죄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단 한명도 남김없이 모든 다 사라져 버리고 죄를 지은 이 여인과 예수님만 남는다. 왜냐하면 이 여인의 죄를 지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심판자, 이 여인의 죄를 정죄하고 책망할 수 있는 심판자, 그래서 모든 율법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시는 유일한 율법의 심판자는 오직 예수님 한분 뿐이시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시는 율법의 심판자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라지게 하시고 홀로 이 죄인 앞에 스셔서 자신이 바로 율법의 최종적인 심파자이심을 나타내신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유일한 심판자이시기에 율법의 모든 규정을 초월하여서 이 여인을 사랑으로 용서해 주신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친히 만드신 율법의 제정자 이시며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성취하신 율법의 완성자이시며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시는 유일한 율법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정죄했던 이 여인을 향해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또 회개하게 하셔서 결국에는 이 여인을 사랑으로 용서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간음의 죄를 지은 이 여인보다 더 큰 죄인인 우리를 향해서도 아니 이 여인을 정죄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악날한 죄인인 우리를 향해서도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규정을 초월하셔서 동일한 용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신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거룩한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참된 은혜와 참된 자유함을 누리시기 바란다. 그럴 때에 우리는 비록 날마다 죄악 중에 허덕이는 연약한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넉넉히 덮고도 남을만한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줄로 믿는다.



말씀을정리한다. 모든 본문의 말씀은 모든 율법을 초월하신 예수님의 용서를 통해서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율법의 유일한 주인이심을 선포한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제정자이시고 또 율법의 성취자이시고 또 율법의 심판자이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율법 안에 갇혀 계신분이 아니라 율법을 초월해 계신 분이시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규정에 초월하여서 이 여인을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도 동일한 용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말씀 기억하셔서 날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서 그 십자가 거룩한 빛 앞에 낱낱히 드러나는 우리의 죄악들을, 우리의 허물들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고백하고 그 십자가로 부터 흘러나오는 참된 은혜와 참된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예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여인은 간음한 여인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 바로 남을 정죄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십자가의 거룩한 빛앞에 속일 수 없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내려놓고 참된 은혜, 참된 자유함을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인도해 주소서!



환우들을 위해

코로나 사태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