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QT
Q U I E T - T I M E

새벽설교노트 -요한복음 7:45-53 - 신민용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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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3-18 21:17
조회
773
03/16/2020
본문: 요한복음 7:45-53
제목: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그리스도
설교자: 신민용 목사님
찬송가: 슬픈 마음 있는 사람 (91장)
요한복음 7장 37-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대로 여기에 나온 명절은 이스라엘 절기에 있어서 초막절을 가리킨다. 그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서 초막절이 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스라엘땅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때 비를 저장해 놓았다가 이제 비가 오지 않는 건기때가 되면 그 물을 사용하며 살았다. 그리고 초막절기간이 다가오면 저장해 놓은 물이 다 떨어지게 되면서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귀한 시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초막절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구했던 가장 큰 기도제목 중에 하나가 이른 비였다. 물이였다.
이런 내막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보자. 예수님께서 물이 필요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떻게 이 물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무슨 말인가? 이른 비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생수의 강물이 흘러넘치게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39절에 보니까 이 물이 성령을 의미한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살아있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우리 심령에 선포되어 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우리는 참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큰 파도에 휩쓸려 가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상에 공포와 두려움이 담긴 부정적인 소리로 가득차있다. 육신적인 건강문제를 비롯해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점점 더 문제는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될 메세지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의 목마른 심정을 채워줄 수가 없다. 세상의 그 어떤 소리가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해 줄 수가 없다. 환난 날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시다. 로마서 15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5: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이 세상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이 세상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와 성도인 우리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야 한다. 오늘 또 요한복음 37절도 한번 보자. ‘누구든지’이다. 목마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오라는 것이다. 언제 오라는 것이다. 아무떼나 오라는 것이다. 목마르거든 아무떼나 예수님께서 와서 예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이다. 모두가 불안해 하고 있을때 우리는 이 세상의 소망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믿고 예수님에게 나아가야 한다. 더욱 예수님만 바라보면 예수님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간다. 우리의 목마름을 다른 것들로 채우려고 했던 우리의 모든 노력과 시도들을 내려놓고 우리의 모든 마음과 삶의 방향을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한다. 우리가 늘 이렇게 소원하며 찬양했다. 이렇게 늘 기도했다. ‘ 아! 정말 에녹처럼 살고싶다. 요셉처럼 살고 싶다. 노아처럼 살고싶다. 정말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그들처럼 살아 가고 싶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증인들처럼 정말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정말 예수그리스도만 믿고 따라가며 살아가고 싶다.’ 우리가 늘 그렇게 기도하며 찬양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늘 그렇게 기도하고 소원하고 찬양했던 그 믿음을 지금 보여줄 때이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이다. 우리의 가장 큰 은혜, 가장큰 소망,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것, 이것이 늘 기도제목이었고, 늘 찬양이었는데 이제는 이것이 우리 삶의 고백이어야 한다. 이 기도제목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두려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황도 안다. 두려움과 불안도 우리에게 있다. 이 문제가 언제 풀릴지 우리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 우리가 그 상황을 감당해 낼 수 있고 감당해 내는 것을 넘어서 이겨낼 수 있고 이 세상을 향해, “이 세상의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기쁨으로 이겨냅시다. 우리가 평안함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소망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세상은 우리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 왜 저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걸까? 왜 저 사람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그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것일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어려운데 그 마음속에 기쁨이 있는 것일까? 마음가운데 저렇게 평안함이 있는 것일까?’
이제 우리가 그 믿음을 보여줘야 할때이다.
주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때 우리 치료자 되시고 우리의 기쁨과 소망되신 예수님의 특별한 은헤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 임하게 될줄로 믿는다. 이것이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메세지이다.
2.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바로서라!
오늘 본문 45-4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그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나온다. 45절을 한번보자 관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을 향해 ‘왜 잡아오지 못했냐?’ 거세게 질타한다. 그러자 46절에 관리들이 이렇게 응답한다.
(요한복음 7: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관리들이 예수님을 잡아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냐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그들이 압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답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요한복음 7: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무슨 말인가? 너희도 예수에게 속아 넘어갔냐는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요한복음 7: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다시 말해, 이미 예수님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그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들리면 들릴 수록 더욱 더 강하게 예수님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세상은 여전히 예수님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긍정적이지 않다.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그 빈틈을 파고들어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의 상황과 환경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 놓는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서 결국은 믿음까지 무너뜨리게 만든다. 이럴때 우리는 그들의 소리에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세상의 소리에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서는 안된다.
(마태복음 7: 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비가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그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그 기초가 반석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반석되신 예수님에게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믿음의 든든한 기초이다. 그래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불어고고 바람이 불어도 정말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소망하기는 이 새벽에 하나님앞에 나오신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정말로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에게 다시금 세워지게 되는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 세워지게 되는 그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누가 뭐라해도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면서 정말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가운데 삶가운데 풍성하게 맺어지게 되길 정말 간절히 소망한다.
3. 지혜와 순결함이 담긴 용기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7: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여기에 보니까 요한복음 3장에 나왔던 니고데모가 다시 등장한다. 우리야 이미 잘 알고 있는대로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때 밤에 찾아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밤에 찾아왔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이후 지금 니고데모의 모습이 달라졌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하게 된다.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의 입장에 묻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종교권력의 핵심이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의 그 무리에 속해 있었던 바리새인 입장에서 볼때 자신의 권력과 자신의 세상적인 지휘를 잃어버리지 않을려면 그냥 그들의 입장에 묻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위해 용기를 낸다. 여러분 용기는 무모함이 아니다. 무장적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였다.
(요한복음 7: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법으로 판단할때는 최소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부터 먼저 줘야한다는 것이다. 자기들 마음대로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하고 있는 절차에 부당함에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태복음 10장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하기 위해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당부했던 말씀이 뭐였냐면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믿음안에는 지혜와 순결함이 담겨야 한다. 우리가 많은 결정과 생각들 판단을 할때 하나님의 지례로 우리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하게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 그 믿음안에 그 지혜와 순결함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냥 “용기있게 앞서 갑시다” 이런것이 아니라 용기있는 그 믿음안에 지혜와 순결함이 담겨야 한다. 오늘날 이 세상을 끊임없이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여러가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럴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때 야고보서에 보니까 ‘너희가 지혜가 없거든 구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넉넉하게 풍성하게 가득 부어주실 것이다.’이렇게 야고보가 말했다. 지금 우리는 그 말씀 그대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우리가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어려운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없이는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여러 판단과 결정을 할때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옵솟서! “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들의 문제, 또 인생의 여러가지 선택과 결정을 할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여러가지 많은 생각으로 판단으로 결정할때 우리는 하나님는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 할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을 할 수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순결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용기있게 이 세상을 향해 믿음을 선포할때도 바로 비둘기 같이 순결한 그리고 뱀같이 지혜로운 이 용기있는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담대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말씀을 맺겠다. 어려울때일수록 우리는 복잡함에서 벗어나야한다. 단순해 져야한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단순해 져야한다. 우리가 생각이 복잡하면 어떤 말씀을 많이 하는가? 생각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다고 말한다. 여러분 그 생각을 정리해야한다. 가지 치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생각이 복잡할 수록, 상황이 어려울 수록 ‘우리의 소망을 예수님에게 두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라’ 그리고 ‘지혜롭고 순결함이 담긴 용기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라’ 이렇게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셨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것이 있다. 메세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 어려운 시기 잘 이겨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래서 우리 잘 이겨내서 세상을 향해 보여줬으면 좋겠다. 믿는 성도들이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잘 이겨내고 또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함으로 이 모든 문제를 잘 이겨내서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님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여 주옵소서!
지혜와 순결함이 담긴 용기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문제를 위해
본문: 요한복음 7:45-53
제목: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그리스도
설교자: 신민용 목사님
찬송가: 슬픈 마음 있는 사람 (91장)
요한복음 7장 37-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대로 여기에 나온 명절은 이스라엘 절기에 있어서 초막절을 가리킨다. 그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서 초막절이 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스라엘땅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때 비를 저장해 놓았다가 이제 비가 오지 않는 건기때가 되면 그 물을 사용하며 살았다. 그리고 초막절기간이 다가오면 저장해 놓은 물이 다 떨어지게 되면서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귀한 시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초막절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구했던 가장 큰 기도제목 중에 하나가 이른 비였다. 물이였다.
이런 내막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보자. 예수님께서 물이 필요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떻게 이 물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무슨 말인가? 이른 비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생수의 강물이 흘러넘치게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39절에 보니까 이 물이 성령을 의미한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살아있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우리 심령에 선포되어 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우리는 참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큰 파도에 휩쓸려 가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상에 공포와 두려움이 담긴 부정적인 소리로 가득차있다. 육신적인 건강문제를 비롯해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점점 더 문제는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될 메세지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의 목마른 심정을 채워줄 수가 없다. 세상의 그 어떤 소리가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해 줄 수가 없다. 환난 날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시다. 로마서 15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5: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이 세상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이 세상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와 성도인 우리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야 한다. 오늘 또 요한복음 37절도 한번 보자. ‘누구든지’이다. 목마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오라는 것이다. 언제 오라는 것이다. 아무떼나 오라는 것이다. 목마르거든 아무떼나 예수님께서 와서 예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이다. 모두가 불안해 하고 있을때 우리는 이 세상의 소망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믿고 예수님에게 나아가야 한다. 더욱 예수님만 바라보면 예수님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간다. 우리의 목마름을 다른 것들로 채우려고 했던 우리의 모든 노력과 시도들을 내려놓고 우리의 모든 마음과 삶의 방향을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한다. 우리가 늘 이렇게 소원하며 찬양했다. 이렇게 늘 기도했다. ‘ 아! 정말 에녹처럼 살고싶다. 요셉처럼 살고 싶다. 노아처럼 살고싶다. 정말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그들처럼 살아 가고 싶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증인들처럼 정말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정말 예수그리스도만 믿고 따라가며 살아가고 싶다.’ 우리가 늘 그렇게 기도하며 찬양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늘 그렇게 기도하고 소원하고 찬양했던 그 믿음을 지금 보여줄 때이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이다. 우리의 가장 큰 은혜, 가장큰 소망,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것, 이것이 늘 기도제목이었고, 늘 찬양이었는데 이제는 이것이 우리 삶의 고백이어야 한다. 이 기도제목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두려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황도 안다. 두려움과 불안도 우리에게 있다. 이 문제가 언제 풀릴지 우리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 우리가 그 상황을 감당해 낼 수 있고 감당해 내는 것을 넘어서 이겨낼 수 있고 이 세상을 향해, “이 세상의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기쁨으로 이겨냅시다. 우리가 평안함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소망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세상은 우리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 왜 저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걸까? 왜 저 사람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그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것일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어려운데 그 마음속에 기쁨이 있는 것일까? 마음가운데 저렇게 평안함이 있는 것일까?’
이제 우리가 그 믿음을 보여줘야 할때이다.
주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때 우리 치료자 되시고 우리의 기쁨과 소망되신 예수님의 특별한 은헤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 임하게 될줄로 믿는다. 이것이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메세지이다.
2.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바로서라!
오늘 본문 45-4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그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나온다. 45절을 한번보자 관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한채 집으로 돌아왔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을 향해 ‘왜 잡아오지 못했냐?’ 거세게 질타한다. 그러자 46절에 관리들이 이렇게 응답한다.
(요한복음 7: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관리들이 예수님을 잡아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냐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그들이 압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답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요한복음 7: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무슨 말인가? 너희도 예수에게 속아 넘어갔냐는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요한복음 7: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다시 말해, 이미 예수님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그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들리면 들릴 수록 더욱 더 강하게 예수님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세상은 여전히 예수님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긍정적이지 않다.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그 빈틈을 파고들어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의 상황과 환경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 놓는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서 결국은 믿음까지 무너뜨리게 만든다. 이럴때 우리는 그들의 소리에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세상의 소리에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서는 안된다.
(마태복음 7: 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비가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그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그 기초가 반석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반석되신 예수님에게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믿음의 든든한 기초이다. 그래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불어고고 바람이 불어도 정말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소망하기는 이 새벽에 하나님앞에 나오신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정말로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에게 다시금 세워지게 되는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 세워지게 되는 그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누가 뭐라해도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면서 정말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가운데 삶가운데 풍성하게 맺어지게 되길 정말 간절히 소망한다.
3. 지혜와 순결함이 담긴 용기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7: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여기에 보니까 요한복음 3장에 나왔던 니고데모가 다시 등장한다. 우리야 이미 잘 알고 있는대로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때 밤에 찾아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밤에 찾아왔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이후 지금 니고데모의 모습이 달라졌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하게 된다.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의 입장에 묻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종교권력의 핵심이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의 그 무리에 속해 있었던 바리새인 입장에서 볼때 자신의 권력과 자신의 세상적인 지휘를 잃어버리지 않을려면 그냥 그들의 입장에 묻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위해 용기를 낸다. 여러분 용기는 무모함이 아니다. 무장적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였다.
(요한복음 7: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법으로 판단할때는 최소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부터 먼저 줘야한다는 것이다. 자기들 마음대로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하고 있는 절차에 부당함에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태복음 10장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하기 위해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당부했던 말씀이 뭐였냐면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믿음안에는 지혜와 순결함이 담겨야 한다. 우리가 많은 결정과 생각들 판단을 할때 하나님의 지례로 우리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하게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 그 믿음안에 그 지혜와 순결함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냥 “용기있게 앞서 갑시다” 이런것이 아니라 용기있는 그 믿음안에 지혜와 순결함이 담겨야 한다. 오늘날 이 세상을 끊임없이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여러가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럴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때 야고보서에 보니까 ‘너희가 지혜가 없거든 구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넉넉하게 풍성하게 가득 부어주실 것이다.’이렇게 야고보가 말했다. 지금 우리는 그 말씀 그대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우리가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어려운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없이는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여러 판단과 결정을 할때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옵솟서! “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들의 문제, 또 인생의 여러가지 선택과 결정을 할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여러가지 많은 생각으로 판단으로 결정할때 우리는 하나님는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 할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을 할 수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순결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용기있게 이 세상을 향해 믿음을 선포할때도 바로 비둘기 같이 순결한 그리고 뱀같이 지혜로운 이 용기있는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담대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말씀을 맺겠다. 어려울때일수록 우리는 복잡함에서 벗어나야한다. 단순해 져야한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단순해 져야한다. 우리가 생각이 복잡하면 어떤 말씀을 많이 하는가? 생각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다고 말한다. 여러분 그 생각을 정리해야한다. 가지 치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생각이 복잡할 수록, 상황이 어려울 수록 ‘우리의 소망을 예수님에게 두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라’ 그리고 ‘지혜롭고 순결함이 담긴 용기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라’ 이렇게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셨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것이 있다. 메세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 어려운 시기 잘 이겨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래서 우리 잘 이겨내서 세상을 향해 보여줬으면 좋겠다. 믿는 성도들이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잘 이겨내고 또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함으로 이 모든 문제를 잘 이겨내서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님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여 주옵소서!
지혜와 순결함이 담긴 용기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문제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