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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노트 - 요한복음 7:25-36 - 이근 목사님

작성자
leekyosik leekyosik
작성일
2020-03-18 21:16
조회
26
03/13/2020

본문: 요한복음 7:25-36

제목: 예수님 깊이 알기

설교자: 이근 목사님

찬송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새 80장)



요즘에 (바이러스로인한) 일들이 많이 있고 한국은 상황이 심하기 때문에 한국에 전화를 해 봤다. 제 친구 목사님들은 거의 경상도분들이기 때문에 경상도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들에게 전화를 했다. 요즘 많이 힘들고 어렵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저는 고향은 전라도여서 가족들에게도 전화를 했더니 그쪽에도 사정 이야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제 고등학교 친구들, 세상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했더니 사는게 힘드네 어쩌네 전화를 했다. 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 같은 나라에서 같은 일을 겪고 있는데 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같은 일을 겪고 있지만 해석하는 것도 다르고 보는 방향도 다르고 대처해가는 방법도 다 다르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간들을 믿음과 신앙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친구들은 지극히 세상적인 눈으로 이 상황을 평가하고 바라보는 그런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그 사실대로 해결해 나간다고 하는것이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요한복음에 예수님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데 이천년 전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이 예수라고 하는 어떤 분을 만나고 그 분을 정확하고 동일하게 해석해 나간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다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천년 후에 살고 있으면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그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게된다. 우리가 지나가는 이 과정이 예수님이 오천명을 먹이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오천명을 먹이셨지만 사람들은 오천명을 먹였다는 사실에 시선이 머물고 열두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을 우리의 온 신경이 다 가있다.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으셨다. 예수님은 바다위를 걸으시면서 바다도 자연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나도 어떻게 하면 저렿게 능력을 받아 바다 위를 걸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가치를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세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알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가치관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그 괴리가 굉장히 큰 사람들은 단순히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혼란스럽고 격동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나의 열심과 정성으로 내가 생각하는 여기까지 도달해야하고 여기까지 누려야 되는데 예수님이 말씀은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지 않는다. 가치관이 다르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화가 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냥 자기들 수준만큼만 알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어떤 사람이 등장한다.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 어떤 사람은 굉장히 똑똑한 것 같다. 예수님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저 사람을 그렇게 죽일려고 정부에서 그러더니 이제는 놔두는 것 보니까 정부에서 저 사람을 이제는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인가 아니지 메시아라면 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몰라야 하는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분명히 알잖아 나사렛이라고 하는 촌동네에서 온 그냥 이상한 사람인데 저 사람을 당국자들이 가만히 내버려 둔다는 것은 저 사람이 분명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이 ‘죽여야지’까지 간다.



'그리스도가 아니니까 저 사람이 살아있으면 안돼'라는 그 말을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논리를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다. 예루살렘에서 왔다라고 표현하는 것, 예루사람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 사람은 성전 중심의 사람들이고 구약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말하는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어떤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 그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받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에 지장을 받으면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저 제삼자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지칭을 받는 사람들, 그런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믿음의 사람이라고 지칭을 받는 바로 그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어떤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그 어떤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되 깊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직접 자기 자신을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7: 28- 29)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기가 참되신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유대인들 당신들은 정작 하나님을 정확히 모르고 있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7:33-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말이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적을 때 요한이 적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요한복음에서 요한이 나열하는 예수님의 기적은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이 성경이 읽는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왕종인신’이것을 성경공부하다 배우신 적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요한복음은 ‘신=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요한이 말씀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여기에 다 들어있다. 앞에서 나열하고 있는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것을 증명하고 보여준 것이다. 오천명을 먹이셨다.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바다 위를 건너셨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병든 자를 고치셨다. ‘이 분이 진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다. 그런데 요한이 정말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기가막힌 예수님이 말씀하고자하는 또 하나의 기적이 있다. 그것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그 기적이 방금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을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시겠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죽으실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창조자가 한낱 피조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가 있는가? 이것이 가장 큰 기적이라는 것이다. 이 기적을 위해서 작은 기적들을 요한이 나열해 가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또한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뭔가를 걸치고 계시지만 당시의 십자가의 형벌을 보면 예수님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라고 많은 신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이것을 우리가 만약에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얼마나 챙피한 일인가? 그것도 일반 우리가 한다고 해도 챙피하고 수치스러운 일인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은 사람이 볼 때는 너무나 챙피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관으로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영적인 가치관은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맨몸이 드러났다고 한들 예수님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십자가에 못이 박혔다 하신들,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수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정말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가치, 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진짜 부끄럽고 진짜 챙피한 것은 뭐냐면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손가락질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그 사람들이 그 어떤 사람들이 챙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더 소중한 생명 살리는 일이 있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죽는 기적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더 다시 살아날 것이고 또 하나님의 품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그런 엄청난 기적과 같은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가치관 속에서 이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야 되는 것이다.



제가 책을 하나 읽는데 배경락 목사님이 쓰신 ‘ 곱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라는 책이있다. 그 책에 한 구절에 있는데 이 친구 목사님의 사모님이 교사다. 그런데 그 교사 중에 이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단의 삶이 너무 아름답고 신실했다고 한다. 잠깐은 저럴 수 있겠지 이단이니까 그런데 수년을 지나도 그의 삶이 한결같더라는 것이다. ‘그래 믿을려면 저렇게 믿어야지’ 또 이 목사님이 또 하루는 등산을 하게 되었는데 산 위에 절이 있었는것 같다. 가는 길에 어느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느 할머니 한 분이 계단을 한 계단 올라가고 손을 꼭 쥐고 뭔가 읊조리고 또 계단을 하나 올라가서 손을 모아 읊조리고 가까이 가서 보니까 손을 쥐고 ‘나무아비타불’ 그러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진심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 할머니께서 자신의 모든 진심을 다 담아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것을 느꼈다라고 한다. 그러며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세상 사람도 저런 열심과 정성으로 살아간다면 이것은 어느 종교에나 있는 열심과 정성일 수 있겠구나! 어쩌면 나도 그냥 아무 목적과 향방이 없는 그런 열심과 정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이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가져야 하는 열심과 정성은 무엇일까? 그러다가 이 분의 글에서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가를 정신 바짝 차려야 되겠다’ 이렇게 표현을 하셨다.



저도 이 글을 읽다가 똑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내가 누구를 믿고 있지?’ 이 아침에 내가 나와서 ‘누구를 향해서 기도를 하고 있지? 아이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겠네’라고 저도 같이 했다. 우리는 조금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방향이 정확해야 하고, 우리는 조금 부족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깊이있게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베푸신 가장 큰 기적은 다른 기적이 아니라 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기적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예수님을 깊이 안다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사는 것이 단순할수록 예수님을 알기가 쉬운데 사는것이 복잡하다, 복잡하다는 것은 생각이 많고 가치관도 다양하고 방해하는 것도 많고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은데 우리를 막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쉬게 만드는 것이고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있다는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막연하게 아는 그 ‘어떤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 이름 앞에 정확하게 그분의 가치관을 가지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길 원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오늘도 그 분을 따라가는 것이 여기 앉아있는 저와 여러분의 몫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저는 오늘 기도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기도하고 있는가?

막연하게 나는 누군가에게 막 내 기도제목을 쏟아 놓는데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당황스런 일이지 않는가? 그래서 오늘 기도할 때에 더 예수님을 깊이 알고 예수님을 향하여서 예수님을 위하여서 또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마음을 쏟아 놓는 그래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그런 이 아침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내가 믿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하나님! 세상이 나를 혼란스럽게 해도 하나님! 믿음 흔들리지 않고 오늘도 예수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알고 그분을 향하는 나의 마음, 나의 믿음, 나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주말 사역과 예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