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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노트 - 요한복음 7:10-18 - 이한균 목사님

작성자
leekyosik leekyosik
작성일
2020-03-18 21:10
조회
21
03/11/2020

본문: 요한복음 7: 10-18

제목: 군중의 수군거림이 되지 말라!

설교자: 이한균 목사님

찬송가: 예수 따라가며 (449장)



요즘 시대를 지식의 홍수시대라고 말한다. 어디서든지 우리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 때로는 시간과 상관없이 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요즘 시대이다. 사실 원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이제는 원하지 않는 것까지 듣게 되고 또 보고싶지 않은 것까지 보게 되는 시대가 바로 이 지식의 홍수 시대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렇게 뭔가 많이 듣게되고 배우게 되면 우리가 조금 더 똑똑해지고 더 지식이 넘치고 풍성해지고 알아지는 것 같아 보이는데 실질적으로 우리가 삶가운데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진리가 분명해 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얻으면 얻을수록 진리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아 지는 것 같다.

오히려 지식의 양이 많아 질수록 도대체 그 가운데 참된 지식은 무엇이고 잘못된 것은 무엇인지 혼돈가운데 빠질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지식의 홍수 시대에 오히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세상에 외칠 때 우리는 이미 그 진리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하신 그 예수님이 바로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진리를 알고 있는데 사람들 가운데 나아가서 ‘이것이 진리다. 이것을 믿으면 너희들이 정말로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것이다.’라고 우리의 입으로 자랑스럽게 담대하게 전파해야 하는데 우리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진리의 홍수시대 가운데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이 진리를 전파하기가 참 어렵다. 그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삶가운데 어려운 숙제 중에 하나라는 것을 너무나도 자주 느낀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다 ‘진리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왜 이것을 전파하기기 힘든걸까?’ 정말 이 진리가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이 되고 정말 하나님의 능력되심을 알고 있는데 왜 이것을 남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될까? 우리 이런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곤 한다. 그것은 굉장히 간단한 질문이다. 진리를 참된 진리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참된 진리를 깨닫고도 지식의 홍수시대 가운데 진리를 전파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사실 이 진리는 명사가 아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히브리서 4: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여기서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 이 진리의 말씀은 어떤 것이냐? 그냥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머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활력이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정말로 살아서 움직이는 역사가 바로 진리의 말씀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우리 몸 속에 들어와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한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리 감추고 싶어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여러분이 경험하고 제가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머물러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도 우리의 삶 가운데 그저 잠자코만 있다? 이것은 우리가 참된 진리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아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첫번째는 군중, 무리들, 또 하나는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들이 동일하게 한 가지 문제가 봉착되어있다. 진리를 훼방하는 자들, 유대인들과 맞닥뜨려진것이다. 이 유대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점잖은 사람들이 아니였다. 이 예수님에 대해서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자들, 특별히 예수님을 전파하려고 하는 자들 가운데 훼방을 놓는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잡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군중들 가운데로 다가오자 군중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요한복음 7: 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이 군중들은 예수님에 대해 많이 들었던 사람이다. 많이 보았던 사람들이다. 오천명을 이 오병이어로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봤고 그리고 물 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는 그 이야기들, 수많은 병자들을 고쳤던 이야기들을 수없이 들어왔고 그리고 그 그 고침의 현장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은 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지 자신의 이야기는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없이 듣기는 했는데 수없이 보기는 했는데 정작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난 모습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7: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본 것 많고 들은 것 많지만 아무도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쳐지는 역사를 보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을 전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서 문제가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서 문제가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얼마나 많이 읽는가? 얼마나 설교의 말씀을 많이 듣는가? 그런데 왜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기가 어려운 걸까? 그것은 성경 속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말씀을 들어도, 아무리 굉장한 역사를 볼 지라도 그 말씀의 능력이 내 삶의 이야기가 될거라는 것을 내가 확신하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누군가에게 전하기가 두려워지고 누군가에게 나타나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의 삶 가운데서 정말 하나님께서 주관자라고 하신다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진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것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정말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져 주시고 해결해 주실것이라는 그 믿음을 우리 속에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진리가 그들의 이야기일 뿐 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능력이 우리의 삶가운데 절대로 펄쳐질 수가 없다. 정말로 우리의 삶 가운데 두려움에 쌓여 있다면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린다. 이 군중과 다르게 예수님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신다.



(요한복음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여기에 보면 시기가 나와있다.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그런데 이 명절의 중간이라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 명절의 중간 쯤 지나가고 어느 정도 됐을 때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중간’이라는 단어는 그 시기적인 것 뿐만 아니라 ‘한 복판에’ ‘ 가장 중요한 날에’ 라는 의미도 담고 있기도 한다. ‘이 명절의 중간에’ 라는 것을 해석해 보면 명절의 중간 시기쯤 와서 참여한 것이 아니라 명절의 한 복판, 특별히 가장 중요하고 특별히 이 초막절에서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날 가운데 예수님께서 아무래도 성전에 올라가셔서 가르치신것 같다. 사람들이 막 몰려드면서, 유대인들이 몰려드는 그 시기에 두려워하며 나갔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정 가운데로 들어 가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성전에서 가르쳤던 이 사실 자체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전파하는 진리에 대해서 일말의 두려움도 일말의 불안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분이 전하는 그 말씀이 자신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는 그 모습 자체를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진리를 전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냐면 그 진리 자체가 자신의 이이갸이기 때문에 조금도 거리낌없이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알고 있는 시대마다 변화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진리도 아니다.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불변하는 진리이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너희를 향한 이야기다. 그러니 그 진리의 말씀은 너희 앞 가운데 받아 드려라’ 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 가운데 그러한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의 삶을 바라볼 때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시나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어떤 분들은 말씀을 읽지 않으면서 말씀의 능력들이, 말씀의 사건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벌어지길 소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먹지 않고 배부르기를 원하는 것과 같고 먹지않고 힘을 내고 능력을 내고자 하는 모습과 동일하다.



정말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선포되길 원한고자 한다면 우리는 말씀을 먹어야 한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런 기적들, 이런 능력들이 펄쳐지길 원한다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말씀들이 펄쳐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말씀보다 기도가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바로 이 성경이다. 하나님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낸 계시가 이 성경이고 가장 확실하게 나타낸 것이 성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가운데 기도가 서 있어야지 말씀을 버려두고 기도가 설 수 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저희들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들이 내 삶 속에서 진짜 내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그 진리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말씀을 책 읽기처럼 해서는 안되고 말씀을 읽는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읽는 이유에 대해서 전 세계에 그리스찬들에게 굉장히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 자체가 우리 형편이 나아지기 위함도 아니고 우리의 머리의 지식을 채우기 위함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을 바라볼 때 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야 한다.



마치 우리가 고귀하고 소중한 음식, 화려한 음식 가운데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각을 총동원해서 그 요리를 음미하고 맛보는 것처럼 정말로 고귀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찬 이 말씀을 바라볼 때 그냥 책 읽듯이 읽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 내려 하는 영적인 미각을 총 동원해서 그 은혜와 영광을 발견해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지며 그 진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영광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 그 영광 가운데 참여하게 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이야기, 영광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 18절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요한복음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우리가 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길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 내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발견해 내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진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이것은 굉장히 단순하고 너무나 잘 아는 내용같다. 하지만 실상 우리이 삶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단어, 우리가 원하는 문장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할때가 있고 때로는 나를 책망하며 나에게 꾸짖으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듣지 않기를 원할 때가 있다.



요즘 시대를 살아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하며 논쟁하는 사람들이 비크리스챤, 안티크리스챤이 아니라 오히려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논쟁할 때가 많다.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이것은 시대적, 문화적 유산이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벌어졌던 이야기일뿐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그 당시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라고 크리스챤들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들 가운데 영향을 펼칠 수가 없다.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면 그들이 가진 언어의 한계는 그것까지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이것이 진리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일하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자신의 영광을 펄쳐 보여 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분명히 이야기하신다.



(요한복음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이 성경을 바라볼 때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내용을 바꿔준다는 것이다.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말씀을 읽고 나누는 우리의 소리가 군중의 수근거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진리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려서 내 삶 가운데는 전혀 영향력도 없고 그것을 전파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사라져 버리는 그런 수근거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말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역동하고 있고 정말로 그 영광을 미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경험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들이 펄쳐지고 그리고 영광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은혜로 넘쳐서 정말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이 살아서 움직이며 정말 눈군가에게 혼과 영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 까지 하는 그 능력의 말씀들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기위해서는 그 말씀이 그들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을 읽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 가운데 영광을 발견하시고 그리고 그 말씀이 내 가운데 떨어지는 하나님의 음성이라 들으면서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